Sunday, July 6, 2014
6월 14일 올빈 번개 (라뚜르 vs 슈발블랑 74)
급작스러운 몸살에 후기가 늦어졌네요; ㅎ
토욜 보르도 올빈 정모는 축구로 따지면 호날두와 메시가 뛰노는 올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가히 역대급이었습니다. 이 날 마신 와인 하나하나가 어디에서도 1등이 되었을 법하지만 슈발블랑 74와 샤토 라투르 74 앞에선 애송이 소리밖에 못듣는 굴욕의 장이 될만큼 멋진 벙개였습니다. 먼길 고생하신 황맨 형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진에는 이날 마신 와인 말고도 세병이 더있네요 ㅎ)
'Les Truffieres' Domain Costal, Chablis 2012
아직 에티켓을 보고 대체 뭐부터 먼저 써야할지 모르는 초보입니다 =_=
웰컴주였던 샴페인 다음으로 서빙된 이 샤블리의 화이트 와인은 사실 처음엔 서빙온도가 너무 높은 바람에 순서가 제일 뒤로 밀린 와인입니다. 화이트는 역시 아이스콜드죠ㅎ. 압도적인 레드의 세례 후에 마신터라 무슨 느낌이 남았겠나 싶지만 개인적으로 맛있게 마셨습니다. 'Les Truffieres'를 직역하면 '나는 송로버섯이다' 정도 되겠네요. 금값보다 비싸다는 송로버섯을 구현하겠다는 생산자 의지와 자신감이 드러나는군요ㅎ 시작부터 버섯을 찾아보자며 의기투합했으나 차게 마셔도 미지근히 마셔도 흠.... 흙냄새라도 훅 났다면 이것인가 싶었을텐데... 하지만 버섯을 차치하더라도 좋았습니다. 많이 누렇지 않는 색에서도 미리 느껴지듯 시트러스 및 프루티한 맛이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되려 조금은 크리미한 느낌이 있어서 절제된 산도와 맞물려 약간의 단맛이 났습니다. 이 단맛이 10초가량 지속되면서 입속에서 음미하며 마시기 좋았네요.
Chateau L'Arrosee, Saint-Emilion Grand Cru 1983
올빈의 첫 스타트였던 라로즈. 역시나 루비와 벽돌사이의 색깔이 참 이쁩니다. 크리미 하면서도 프루티함보다 올빈 특유의 흙? 야채? 냄새가 기분좋게 올라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달달 해지면서 레드베리향도 나는 군요. 맛 역시 훌륭했습니다. 오랜세월을 견디며 밸런스가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니다. 입에 착착 감겨서 마시기에도 너무 편하네요. 메를로의 부드러운 맛과 아주 잘익은 캡프랑의 부담없는 구조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타닌도 거의 남지 않아 제대로 시음적기 였습니다. 사실 완벽한 밸런스에도 심도 깊은 맛이나 캐릭터가 확 살지 않아 인상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일찍 뜯었으면 좀 나았을까요? 맛을 평가하기 앞서 오랜 세월을 이겨낸거 자체가 훌륭한 포도라는걸 인증하네요. 시작부터 훌륭했습니다!
Chateau Cheval Blanc 1974
이 날을 어느때보다 특별하게 만든 호날두와 메시 중 첫번째였던 슈발블랑입니다. 원래 시음적기가 1996년까지였다 하니 이미 때를 20년 가까이 보내버린 와인입니다. 그러나 소문대로 엄청난 놈이었네요. 코르크 상태도 완벽! 처음에는 라로즈의 냄새와 비슷한 선상에서 더 파워풀한 향이 나고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있었습니다. 맛도 그 연장선상이었는데요. 입안의 어느 부분을 터치해도 퍼지는 맛과 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4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혀를 잡아주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입안을 한바퀴 돌리고 나면 남는 혀의 얼얼함 마저 너무 좋았네요. 라로즈와 비교해서 심도 깊은 맛에 또 반해버렸습니다. 후루룩 몇방울만을 흡입해서 혀 가운데 얹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 와인을 후룩 마셔버릴수 없기에 2시간 넘게 잔에 남겨두었습니다. 한시간이 지나서는 상큼하면서 달달한 꽃향기가 느껴졌고 2시간이 지나니 거름, 나무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메시같은 라뚜르도 지나가고 라스까스도 지나갔지만 결코 지지 않습니다. 2시간 반이 지나서야 조금씩 힘을 잃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팔색조같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들 너무 멋지게 늙은 노신사 마치 이순재 같다는. 제가 느끼기엔 정정함에 70세까지는 아니고 50~60대 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에 마신 라뚜르가 레스토랑에서 만난 젠틀한 턱시도 노신사 같다면 슈발블랑은 노래도 좀 하고 그림도 그릴줄 아는 멋진 노신사같다고 할까요 ㅎ
Grand Vin de Chateau Latour 1974
슈발블랑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슈발블랑을 지워버릴 뻔한 와인을 백투백으로 접하고 말았습니다. 라뚜르는 향에서부터 젠틀함과 고급스러움이 뿜어져 나옵니다. 스파이시하거나 개성이 있다기보단 부드러운 분유향 바닐라향의 크리미함이 전체적인 향을 진하게 감싸네요. 슈발블랑이 팔색조의 향수 같은 매력이 있었다면 라뚜르는 '내가 올빈 보르도다' 라고 외치는 듯한 클래식함이 인상적입니다. 마셔보면 심도가 아주 깊지는 않지만 긴 여운의 산도 덕에 피니쉬가 아주 깁니다. 입에 물고 돌려 마시면 냄새에서 크리미함 아래 있던 플로럴한 향이 후욱 올라옵니다. 처음엔 산도 때문에 거부감을 보인 분들도 계셨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완전체가 되어버리는 라뚜르입니다. 이쯤해서 맛은 몰라도 향은 슈발보다 라뚜르가...oh wait... 30분 이상 열어둔 슈발은 향수가 되버렸네요. 허허 정말로 호날두냐 메시냐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와인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슈발처럼 화려한 변신을 하기보다 젠틀함을 끝까지 유지하는 라뚜르였습니다. 전에 언급한대로 젠틀한 턱시도 노신사는 품위를 잃지 않더군요!
Chateau Leoville Las Cases 1994
앞의 압도적인 두 와인 이후 쉽사리 어느 한잔을 비우기도 다른 와인으로 덮어버리기에도 안타까웠습니다. 그 뒤에 바로 등장한 라스까스이기에 개인적으로 이날 가장 과소평가 받은 와인이 아닐까 하네요. 40년을 견딘 노신사 앞에 이 20년 밖에(?) 안된 와인은 일단 뒤에 훅 올라오는 알콜향으로 정신을 번쩍들게 합니다. 참 20년 세월에 이렇게 파워풀함을 유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음하고 나니 타닌이 잡아주는 것도 그렇고 참 전형적인 메독의 보르도 같다라는 인상이 있었는데요. 뭐랄까 아 이렇게 현실세계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훌륭한 와인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도 과소평가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부담스러었던 첫인상과 달리 알콜 향이 사라지고 진한 심도와 밸런스가 정말 좋았졌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느껴지는 밸런스가 훌륭했습니다.
Sociando Mallet, Haut-Medoc 1990
드디어 마지막 레드인 말레에 이르렀습니다. 캐릭터가 살아있는 말레의 향에 매료됐습니다. 구리구리하면서도 부드럽고 리치한 향이 좋았습니다. 라뚜르의 리치함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앞의 강자들에 눌리지 않고 발산하는 캐릭터가 마무리 와인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시음하니 세련된 느낌도 있고 향과 같은 선상의 분위기를 냅니다. 컴플렉스한 맛은 아니었고 처음 마신 라루즈랑 비교하자면 피니쉬도 긴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맛보다는 향이 더 좋았다고 느꼈네요.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첫인상의 좋은 느낌이 주욱 이어지는 거같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끝까지 매력을 유지했더라면 오늘의 꼴찌조차 뽑기 힘들정도로 혼란스러운 날이 었을텐데 말이죠. 역시 첫인상에 속지 말자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ㅎ 물론! 메시와 호날두와 비교해서 그렇지 역시나 좋은 와인이었습니다. ㅎ
이날의 와인들이 워낙에 좋기도 했지만 이번 벙게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훌륭한 보관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는 올빈들이지만 거듭되는 코르크의 완벽한 상태에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누리님의 더블 디켄팅이 화룡정점을 찍었네요! 오늘 모임에서 가장 힘들었던건 순위놀이. 마치 한편의 나는 가수다를 보는 듯했습니다. 결국 1등을 못정하고 자리를 파했네요ㅎ 1970년대도 이렇게 멋지게 정복하니 욕심이 더 생기는 자리였습니다.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No comments:
Post a Comment